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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문학

수필 윤대녕 - 삶과 죽음에 대한 가벼운 단상(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작성일 19-04-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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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6,59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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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한 가벼운 단상 -  윤대녕,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중에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 중에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봄비가 내리는 날,

창 밖에 벚꽃이 피어 있는 병원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런데 같은 날 주인공인 ''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게 된다.

왜 하필 이런 상황으로 소설을 시작했는지 혹시 궁금해하는 독자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생각이다.

우리네 인생이란 삶과 죽음이 항상 동시다발적으로 겹쳐 일어나는게 아니냐고. 그것은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다니게 마련이라고.

며칠 전에 절친한 선배를 만나 오랜만에 참치회를 먹으러 갔다. 그게 일상적으로 먹을 수 없는 것이 우선 값이 비싸다.

메뉴 등급도 다양해서 그날 우리가 간 횟집은 다섯 등급으로 차이를 두고 있었다. 우리는 딱 중간인 35천원 짜리

2인분과 따끈한 청주 두 잔도 곁들여 주문했다. 그때 선배의 휴대폰 벨이 울렸고 통화는 다소 길게 이어졌다.

그 사이 회가 도마에 썰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종업원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청주도 가져왔다.

미리 얘기하면 나는 해산물을 아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회, 또 그중에서도 참치회를 먹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특히 참치 뱃살은 그 어느 부위보다도 미감을 한껏 자극한다. 하지만 1등급에 속하는

 주방장 특선을 주문해야만 맛볼 수 있는 부위다. 선배가 통화를 끝낼 때까지 나는 젓가락을 쥔 채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이윽고 선배가 폴더를 닫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그만 일어나야겠는데.”

일어나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아직 회를 한 점도 먹지 않았는데. 회칼을 들고 있던 주방장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방금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러니 가봐야 되지 않겠어?”

나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선배는 고인의 맏사위였다. 이미 상이 차려진 다음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8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선배는 급히 집으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다음날 오후에 나는 문상을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갈아탔다. 저녁에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어 차를 두고 나왔던 것이다. 병원까지는 스물일곱 정거장이나 되는 먼 거리였다. 상가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임종 시 고인의 세수는 여든하나였고 암으로 3개월째 입원해 있었으므로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와 마주앉아 육개장을 먹으며 소주도 두어 잔 받아마셨다.

어제 못 먹은 참치회 생각 안 나?”

선배가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잔칫집에나 가야 먹듯 일년에 고작 두어 번 구경하는 음식인데.”

그게 인생살이 아니겠어? 자네 말대로 삶과 죽음이 항상 동시에 출몰하는 모양이야. 이참에 내가 소설이 될 만한 얘기 하나 해줄까?”

나는 뜨악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째 상가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기 상복 입고 있는 여자 있지? 내 막내처제야. 잘 봐, 얼굴이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글세 모르겠는데요. 읍해서 그런가? 얼굴이 좀 부어 있는 것 같네요.”

울기도 울었지만 바로 어제 박피수술을 하고 보톡스까지 맞았다고 하더군. 수술을 받으면 3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시간 간격으로 얼굴에 크림을 발라줘야 한다는구먼. 하지만 어쩌겠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굴이 많이 상하겠네요.”

그럼 안 되지. 그래서 두 시간 간격으로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있어. 상복을 입고 말이야. 하지만 누가 처제를 탓할 수 있겠어.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안 그래?”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메멘트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죽음을 껴안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을 단지 어두운 것, 두려운 것, 의식적으로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을 더욱 탄력 있고 오히려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게 아닐까. (중략) 우리는 나날이 고된 삶을 살고 있으나

동시에 화사한 죽음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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